전체 글
-
다시개벽 제3호 편집후기계간 다시개벽 2023. 5. 16. 10:59
감성개벽으로서의 학문 시인 김수영은 인간의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을 ‘절망이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절망 속에 빠져 있어도 그 절망을 반성하려는 마음이 없을 때, 절망이 절망인 줄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가장 깊은 절망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가장 깊은 절망의 늪 한가운데로 인간을 몰아세운다. 물론 이것은 개개인 탓이 아니라 사회 탓이다. 피라미드 사회가 그 꼭대기에 오르지 못한 개개인의 자존감을 끝없이 박탈하므로, 스스로를 사랑할 힘도 모자란 개개인에게 스스로를 반성할 힘이 남았겠는가. 현대인들이 ‘반성하라’는 양심의 호소와 맞닥뜨릴 때마다 불쾌감과 혐오감의 이빨부터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맞서는 까닭은 그들 자신을 지키는 일에 안간힘을 쏟아야 하는..
-
괴물이 된 지구, 괴물이 될 인간 / 다시개벽 제3호 권두언계간 다시개벽 2023. 5. 16. 10:56
성민교 【개구리-할머니-나-기계-지구-괴물】 남쪽 산자락에 있는 할머니 집에 왔다. 동생과 내가 계속 학생이었기 때문에 지난겨울까지는 한여름과 한겨울에만 할머니 집에 왔었다. 이번엔 마을 입구에서 창문을 여니까 아카시아 냄새가 흠뿍 들어왔다. 이곳에선 불 냄새, 풀 냄새, 흙냄새, 이슬 냄새, 햇빛 냄새, 꽃 냄새, 할머니 냄새밖에 안 난다. 갑작스레 아무것도 없으면서 무언가가 가득한 곳에 오니까 너무 생소해서 편안했다. 마당에서 저녁밥을 먹고 산을 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비가 올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 잠금을 풀고 날씨 어플을 켰다. 맞네요, 내일 아침부터 비 온대요, 할머니. 그제, 그기 그기에 다 나오나. 청깨구리가 개골개골 우는 걸 보모, 비가 올랑갑다. (…) 내가 청개구..
-
다시개벽 제3호 목차계간 다시개벽 2023. 5. 16. 10:44
『다시개벽』 2021·여름호·제3호 괴물이 된 지구, 괴물이 될 인간 ● 권두언 PROLOGUE ○ 성민교. 괴물이 된 지구, 괴물이 될 인간 ● 다시쓰다 RE: WRITE ○ 오세란. 인간중심주의란 성인중심주의다: 인간과 비인간을 교차하는 존재, 아동과 청소년에 대하여 ○ 최석현. 인류세, 가이아, 에코포이에시스: 신기후체제의 시공간과 객체지향 정치 ○ 손성규. 불확실성의 시대를 조망하는 인류학적 사고: 가상의 힘을 마주한 상징계, 그리고 상징 너머의 인류학 ○ 김서형. 지구사 속 글로벌 네트워크와 전염병 ○ 신혜린. 인류세 살아남기: 소멸의 미학 ○ 김동민. 두 문화의 단절과 반목에 대하여 ● 다시그리다 RE: IMAGINE ○ 김선오. 시 외 1편 ○ 김경후. 시 외 1편 ○ 김은정. 「스위트홈」의..
-
다시개벽 제2호 편집후기계간 다시개벽 2023. 5. 16. 10:33
사랑, 바람, 날개, 랄랄라 한여름, 빨간 버스를 타고 파주에 갔다. 담쟁이덩굴이 연회색 외벽을 타고 있는 날개의 작업실에서 날개와 새별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날개는 부지런하고 느긋하게 차를 끓여주고 새별과 나의 티키타카를 아이 같은 얼굴로 관찰하다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방을 꽉 채운 책꽂이에서 그동안 작업해 온 것들을, 25년 전의 것부터 그날 아침의 것까지 쓱쓱 꺼내 보여주었다. 날개가 하는 말들은 대개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였다.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사랑도 말해주었다. ‘사’에서 ‘랑’으로 넘어갈 때 그 ‘ㄹ’의 묘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그러니까 손이나 발을 움직이거나 눈썹이나 입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그가 가벼운 바람을 닮았다고 느꼈다. 바람은 변화..
-
서학은 형상이 있으나 흔적이 없고 동학은 형상이 없는 듯하나 흔적이 있다 / 다시개벽 제2호 권두언계간 다시개벽 2023. 5. 15. 17:42
홍박승진 계간 『다시개벽』의 매년 봄호는 ‘한국 자생적 사유의 흔적’이라는 주제를 다루려 한다. 매년 겨울호의 공통 주제는 ‘서구 이론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인데, 비판은 문제를 똑바로 보자는 것, 지금까지 틀린 질문만 던져오던 것을 그치고 정확한 질문을 새로이 던지자는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놓는 것, 새로운 사유를 창조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낯설고 너무 오래 망각된 일이다. 폐허 위에 높고 넓은 새 집을 세우려면 그만큼 깊고 단단한 토대를 쌓아야 한다. 새로운 열매를 얻으려면 씨앗부터 새롭게 돌보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다시개벽』은 봄이 올 때마다 이 땅에 널리 흩어진 자생적 사유의 흔적을 주워 모은다. 올해 봄호의 원고는 ‘문화예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았다. 문화예술은 사회나 학문에..
-
다시개벽 제2호 목차계간 다시개벽 2023. 5. 15. 17:34
다시개벽 2021·봄호·제2호 형상 없는 흔적, 흔적 없는 형상 ● 권두언 PROLOGUE ○ 홍박승진, 서학은 형상이 있으나 흔적이 없고 동학은 형상이 없는 듯하나 흔적이 있다 ● 다시쓰다 RE: WRITE ○ 유상근, 미래로서의 동양, 동양의 미래: 미국 사이언스픽션과 테크노-오리엔탈리즘 ○ 유신지, 개벽문학의 현황과 전망 ○ 정우경, 사회주의를 넘어선 평등의 상상력: 김남천 소설의 여성 인물 ○ 이호재, 한국의 신관을 찾아서: 신들의 전쟁-하늘님 신명神名 논쟁 ○ 임동확, 최제우의 ‘시천주’와 김소월의 ‘산유화’ ○ 김동민, 대중문화 이론도 개벽할 때-연재 (1) ● 다시읽다 RE: READ ○ 홍박승진, 다시개벽의 역사철학, 내재적 신성을 아는 방향: 백낙청과 김종철의 비판적 포월을 위하여 ○ 이..
-
다시개벽 제1호 편집후기계간 다시개벽 2023. 5. 15. 17:29
“다시 젊은, 다시청춘”을 위하여 우연히 페이스 북에서 백낙청 선생의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로런스를 개벽사상가로 규정하는 글은 이전에도 읽은 적이 있지만 설마 책 제목에까지 넣으실 줄은 몰랐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백낙청을 ‘한국학자’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그의 전공은 영문학이지만 그에게는 ‘한국’이라는 시점이 살아 있다. 『다시개벽』의 지향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구한말의 척사파처럼 서양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관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자기 것이 될 수 있고, 신문화 창조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100년 전에 『개벽』을 주도한 이돈화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인문학계..
-
서구근대 백여년에 운이역시 다했던가 / 다시개벽 제1호 권두언계간 다시개벽 2023. 5. 15. 17:26
홍박승진 본지 편집장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최근 한국의 지식 담론 장에서 신유물론(new materialism)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이 또한 서구에서 한참 전에 논의되었던 것을 이제 와서 새로운 유행인 줄로 알고 뒤늦게 따라가는 꼴이다. 서구 사상의 역사에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 구조주의가 풍미하였고,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포스트구조주의가 성행하였다. 그 뒤를 이어 2000년대에 서구 학계의 화제를 모은 담론이 신유물론이다. 한국에서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매순간 동시적으로 움직이는 오늘날에 20여 년의 격차를 둔 이론 수입과 유행이 여전하다는 것은 깊은 반성을 요하는 문제다. 한국에서 새로운 정치(촛불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