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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개벽 제11호 편집후기
    계간 다시개벽 2023. 6. 15. 15:35

    1919년 3월 1일 거룩한 거족적인 만세운동의 뜨거운 열기를 안고 창간된 〈개벽〉은 일제의 탄압을 가장 많이 받았던 만큼 우리 민족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잡지였다. 당시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 『개벽』지를 옆에 끼고 나오면, 단연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펼쳐졌다고 한다(네이버 백과사전). 수많은 희생을 감수한 동학도는 『개벽』의 글자 수만큼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근현대정치사상 연구에 몰두했던 시절의 나에게 있어 ‘개벽’은 이 땅에 사는 민중의 힘과 의지를 표현하는, 여전히 가슴 뭉클하고 뜨거운 단어다. 이것이 내가, 『개벽신문』에 이어 『다시개벽』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이유다. 일제강점기 『개벽』을 잇는 잡지가 다시 우리 땅에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개벽’의 이미지는 좀 달라졌나보다. “도를 아시냐”고 자꾸 물어오는 종교를 포함하여, 무언가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용납하기 어려운, 미심쩍은 종교들과 연관 지어지는 모양이다. 바야흐로 영성의 수난시대니 그럴 만도 하다. 오방색, 신천지, JMS, 천공의 등장은 영성과 종교의 이미지를 오염시키고 훼손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영성과 관련된 신비스런 이야기를 할라치면 인상부터 쓰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편집회의의 논의 주제 중 하나는 이러한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우리가 ‘다시개벽’이라는 이름을 계속 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동학과 관련된 잡지라는 것을 부각시키면 어떨까 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난 문득, 『개벽신문』이 『다시개벽』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 그 첫 기억이 떠올랐다. 눈 밝은 아낙네, 동네 아저씨, 구한말 지식인이 읽을 것 같은 모습이 『개벽신문』의 이미지였다면, 『다시개벽』은 무언가 꿈틀거리고 압도하고 다소 무섭기도 한 이미지로, 좀 별난 사람들이 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지인에게 물어보니 눈에 확 뜨이는 표지라고 하면서 ‘나쁘지 않다’고 한다. 단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했다. 평소 ‘귀여워야 살아남는다’고 믿는 내게는, 조금 ‘불호’로 다가왔음을 고백한다.


    “전 현재성, 대중성, 이런 거 믿지 않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개벽을 소수 종교와 연관 짓지 않습니다!” 반짝이는 눈, 동그란 얼굴의 아기 곰 같은 홍박승진 편집장이 상기된 얼굴로, 작심한 듯 단호하게,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근대화의 욕망을 폭파하는 것이 학문적 목표이자 다시개벽을 하는 이유’이며, 이것이 대중성, 현재성을 의심하는 자신의 ‘발작 버튼’과 맞닿아있다고 하는 그의 진심이 뜨겁게 전달되었다. 난 그때 ‘개벽’이라는 이름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깨달아졌다. 제호를 바꿔 보려던 그날의 회의는 그의 열정과 진심에 압도되어 일단 유보되었다.


    창덕궁이 보이는 카페 창문에 어두움이 짙어지면서 우리는 약간 상기되고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뜨겁고 치열했지만 신나고 즐겁고 따뜻했던, 이상한 회의였다. 홍박승진 편집장님을 포함하여 개벽의 꿈을 이어가는 박길수, 조성환, 우석영 선생님의 진심과 우애 때문이리라. 이런 분들과 함께 하게 되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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